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밤중에 노래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18년 03월 01일 다음

본문말씀   |

  욥기 35:10~11   Job 35:10~11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0 But no one says, 'Where is God my Maker, who gives songs in the night,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1 who teaches more to us than to the beasts of the earth and makes us wiser than the birds of the air?'

말씀묵상   |

욥이라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무서운 재난이 가정에 닥쳤습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모질게 질긴 생명 하나였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친구 세 사람이 찾아와서 ‘왜 욥과 같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면서 장시간 동안 토론을 했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얻지 못하고 모두다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엘리후라고 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입니다.


이 젊은이가 듣다 듣다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앞에 말한 모든 사람보다도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구름 속에서 빛을 보듯이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듯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욥을 위시해서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불행 자체를 놓고 탄식하기만 하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불행이 더 슬퍼 보이고 인간의 비참함이 더 처절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은 밤에 노래하게 하시고 인생을 연단하시되 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가운데 밤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밤은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줍니다. 세상의 악이 밤을 통해 탄생하고 무서운 계교들이 밤의 침상에서 잉태 됩니다. 사람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밤을 주시는 것입니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거나, 갑자기 직장을 잃거나, 하던 사업이 잘 안 된다는 것은 밤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밤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혜를 정의하면 최상에 가능한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상의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각하기에 최고로 좋은 수단이 밤인 것입니다. 자연계에 밤을 주심은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입니다. 밤이 없다면 꽃이 피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의 밤 역시 꽃을 피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밤을 주시는 지혜가 없었다면 오늘날 내가 무엇이 되었을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대낮만 걸어가도록 하셨다면 인간이 얼마나 교만하고 완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혜자 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싫어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행의 밤을 줄 때가 있습니다. 실패의 골짜기를 걸어가게 하십니다. 이 무서운 사망의 골자기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순진한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그저 밤이 없는 대낮에 탄탄대로만을 걷길 바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밤이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그렇다고 불행이나 고통을 자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 혼자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실 때 아멘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평안과 감사만 주신다면 병이 들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우리에게 소개한 하나님은 밤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밤에 노래를 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지 모릅니다. 사실 밤에 어떻게 노래하겠습니까? 인생은 밤에 노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대낮에는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부를 수 있겠지만 악보도 보이지 않는 밤에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마디로 밤을 만난 인간은 자기 힘으로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을 만난 자녀들에게 노래하는 능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곳에 소망을 두고 걸어가는 인생의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끔 밤이 와도 그렇게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실패를 당했을 때 앞날을 막막할 때 하나님 앞에 그래도 하나님 주신 능력을 가지고 찬송할 수 있다면 마음에서 나오는 찬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밤의 노래를 좋아하십니다.

평안할 때 하나님 잘 만나기 힘듭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받은 축복만 보고 감사하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진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약점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했던 모든 것이 없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드디어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의 노래의 주제는 하나님이 됩니다. 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로움과 전능하심과 성실하심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며 찬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적어도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밤중에 하나님이 좋아서 찬송하고 손에 아무 것도 없으면서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하나님 한 분만으로 큰 소리 칠 수 있는 밤의 노래에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밤에 찬송하십시다.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에 상관하지 마십시오. 모든 고통과 역경을 하나님이 다 제거 하시고 찬란한 아침 햇살에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시간은 옵니다. 그 소망을 붙들고 노래하는 것이 밤 중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쓸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밤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밤을 통과하면서 우는 크리스천, 밤이 싫어서 무서워 떠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아 그 분이 주시는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멋있는 크리스천이 되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 고난 당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크게 쓰시고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밤을 거치지 않고 축복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낮만 찾는 크리스천 되지 마십시오. 밤 중에 찬송하는 크리스천이 되십시오. 이와 같은 놀라운 찬송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길 소원합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설교(1982.3.14)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