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적극적인 헌금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19년 05월 01일 다음

본문말씀   |

  누가복음 21:1~4   Luke 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1 As he looked up, Jesus saw the rich putting their gifts into the temple treasury.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2 He also saw a poor widow put in two very small copper coins.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3 'I tell you the truth,' he said, 'this poor widow has put in more than all the others.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4 All these people gave their gifts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all she had to live on.'

말씀묵상   |

예수님이 원하는 헌금이 어떤 것인지 오늘 말씀처럼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말씀은 없다고 봅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며칠 앞둔 수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몹시 긴장하고 피곤한 가운데 성전 광장 한 구석에 앉아 잠깐 쉬고 계셨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막12:41에는 무리라고 표현되어 있다) 성전 광장에 있는 나팔 모양의 13개 헌금함에 헌금을 넣으면서 지나가는데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어느 과부가 예수님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감격하셨는지 제자들을 따로 불러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본문 말씀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바치는 액수보다 가진 재산으로 그 가치가 평가된다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낸 헌금과 과부의 헌금은 수치상으로는 부자가 많이 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만약 10억을 가진 자가 만원을 헌금했다고 합시다. 십만분의 일입니다. 반면 천만원을 가진 자가 천원을 냈다면 그것은 만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산상으로는 천만원을 가진 자가 낸 천원이 만원을 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의 헌금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된 이유는 극한 가난 중에도 힘에 지나치게 냈다는데 있습니다. 과부처럼 가진 것 전부이거나 1/2을 냈는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평가법은 사람들이 수긍하기 싫어하는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유한 자들에게는 대단히 거북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는 풍요 중에서 내가 드리는 것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십일조든 아니든 자신을 위해 쓰는 총액에 비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놓고 볼 때 당신의 헌금은 과연 과부의 헌금입니까? 부자의 헌금입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넘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인색하다면 진정한 헌금이라 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일반상식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시 과부는 생계보장이 안 되는 극빈자였습니다. 저녁에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데다가 가진바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현대인들은 이런 헌금을 비판합니다. 광신적인 사교집단에서나 보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불건전한 헌금을 장려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교훈하시는 중심은 하나님의 자녀는 경우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 상식에 벗어나는 헌금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 바나바를 위시해서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었던 예루살렘의 초대 교인들. 계산하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주 헌신과 책임문제를 놓고 갈등을 하긴 합니다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헌금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 헌금은 보상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보상에 끌려 헌금하는 자들은 그 헌금의 순수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헌금을 하면 받는 축복을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어야 합니다. 받은 축복에 근거한 것이라야지 받을 축복에 근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 헌금은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당신의 헌금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입니까? 가진 재산으로 평가할 때 정성을 다하는 헌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종종 인간적인 상식이나 계산을 뛰어 넘어 드리는 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까? 보상보다 받은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드리는 헌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설교(1993.6.6)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