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복 받은 큰 죄인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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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마태복음 9:9~13   Matthew 9:9~13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9 As Jesus went on from there,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tax collector's booth. "Follow me," he told him, and Matthew got up and followed him.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0 While Jesus was having dinner at Matthew's house,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ate with him and his disciples.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1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asked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2 On hearing this, Jesus said,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3 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말씀묵상   |

세리였던 마태가 구원 받고 예수님의 제자들 틈에 끼이게 되었던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리란 창기들과 함께 인간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 제일 천한 부류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보장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마태가 당시 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던 금전만능주의에 흠뻑 젖어 있었던 청년이었음을 상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마태의 본명은 레위였습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출신은 아니었다해도 적어도 성전에서 제사장을 도와 일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지파 가운데 가장 거룩한 레위 지파의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어느 가정보다도 신앙훈련을 엄격히 시켰습니다. 그가 이런 집안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그가 세리직을 택한 것은 분명, 몇 년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한 밑천 잡으면 아테네나 로마로 이주해서 여생을 평안히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돈을 얻기 위해서 너무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에머슨이 말한 바와 같이 돈이 지닌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을 얻기 위해 종종 너무 큰 값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돈을 얻기 위해 신앙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을 돈 때문에 팔아 먹었다는 점에서 큰 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타락의 죄는 언제나 중죄로 다루어지며, 예수를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다고까지 합니다(히6:6).

또 한 가지 면에서 그는 대단한 탈선을 하였습니다. 양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양심은 항상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양심이 병들면 믿음이 파산하게 되고, 믿음을 저버리면 양심의 기능은 상실됩니다. 그가 가난한 자들의 얼굴을 맷돌로 갈아도 아픔을 느끼지 않고 빚진 자들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는 그런 철면피라고 한다면 그의 양심은 이미 죽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큰 죄인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예수님은 그가 일하고 있는 세관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기록되어 있기를, "앉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근무 중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가 범죄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그의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가 얼마나 죄를 범하였는가에도 없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직 마태라는 사람, 그 한 사람에게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마태가 죄인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그 다음에 전개됩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시던 그 시간, 놀랍게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를 쫓으라"라는 주님의 그 능력의 한 마디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순간 그날까지 그를 얽어 매고 있었던 돈의 굵은 쇠사슬이 소리를 내며 끊어져 내렸습니다. 돈으로 어두워져 있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내리고 영광의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방을 받았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이 음성이 언제 들렸습니까?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는 날은 해방의 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에게 가장 적절한 때를 맞추어 찾아 오셨습니다. 오직 주님께서만 구원의 완숙한 때를 아셨던 것입니다.

그 후 마태는 일생동안 큰 죄인인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고 예수의 사도라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하는 자기 이름 앞에 언제나 세리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그의 겸손의 표현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기가 세리였다는 것을 늘 상기시킨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1985.4.28)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오늘의 기도   |

죄인의 자리에 직접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의 직업, 우리의 죄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신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불러주십시오.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불러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