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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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다니엘 1:1~7   Daniel 1:1~7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1 In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Jehoiakim king of Judah,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and besieged it.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2 And the Lord delivered Jehoiakim king of Judah into his hand, along with some of the articles from the temple of God. These he carried off to the temple of his god in Babylonia and put in the treasure house of his god.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3 Then the king ordered Ashpenaz, chief of his court officials, to bring in some of the Israelites from the royal family and the nobility-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4 young men without any physical defect, handsome, showing aptitude for every kind of learning, well informed, quick to understand, and qualified to serve in the king's palace. He was to teach them the language and literature of the Babylonians.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5 The king assigned them a daily amount of food and wine from the king's table. They were to be trained for three years, and after that they were to enter the king's service.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6 Among these were some from Judah: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7 The chief official gave them new names: to Daniel, the name Belteshazzar; to Hananiah, Shadrach; to Mishael, Meshach; and to Azariah, Abednego.

말씀묵상   |

다니엘서는 예언서이자 신학서입니다. 여섯 가지의 스토리와 네 가지의 꿈으로 구성된 예언서입니다. 다니엘서는 페르시아,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제국을 관통해서 또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제국을 예언하고 나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다니엘서는 이방나라의 포로가 된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십대 소년의 삶 가운데서 예언과 신학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더불어 다니엘의 삶과 현실을 같이 부딪힐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믿는 사람이 가장 세속적이고 타락한 환경에서 어떻게 주님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예수님이 안 계신 것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또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 장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요구되는 것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가 있겠는가? 이런 문제들과 같이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 앞에서 우리 모두가 다니엘서를 통하여 거룩한 삶의 안내도, 그리고 삶의 경주에서 네비게이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붙잡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1장 1절을 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고대 근동사에 특별한 전투였던 갈그미스 전투라고 있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당시 최강자로 장악하던 이집트가 패망하고 느부갓네살이 고대근동의 새로운 통치자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포로들을 1차 포로로 잡아갈 때 성전의 기명들과 그 당시의 왕족들과 자녀들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갈 때 신학자 제임스 보이스는 다니엘의 나이가 15~17세쯤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그 예민한 나이에 물건처럼 끌려가는 소년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도 도와주는 자가 없고 돌봐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평생 섬겨야 할 왕은 잔인한 느부갓네살 왕이었고 가족도 없이 아내도 없이 남은 평생을 섬겨야 했을 때 눈물 밖에 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국의 멸망과 함께 산산조각 난 청운의 운명을 생각하면 하루 종일 눈물이 음식이 되는 비참한 처지였습니다. 이렇게 포로된 다니엘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 번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 누구에게나 바벨론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바벨론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바벨론은 다니엘처럼 쫓겨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의 장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소, 자신이 의존하던 것이 없어지는 장소, 큰 시험이 있는 장소가 모두 바벨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살려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소외 당할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바벨론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은 다니엘이라는 소년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로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 당하는 장소가 바벨론입니다.

둘째는 이 현실의 바벨론 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바벨론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만나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셔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기명들을 자기 보물 창고에 갖다 둔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2절 앞에 주께서 하셨습니다. 다니엘서의 본문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포로가 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곳에 함께 계신다는 것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어려운 바벨론에서도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일터에서도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21세기의 바벨론에서도 함께 계시는 줄로 확신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희망 없다는 상황에서도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주로 절망과 어두움의 때라는 것입니다. 가장 척박하고 피폐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숨 막힐 정도로 힘든 그 장소가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보는 때는 바벨론이라는 장소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쉽게 풀리고 탄탄대로로 나갈 때가 아닙니다. 절망적인 바벨론의 현장이야말로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장소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두신 그 어려움의 장소가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척박한 바벨론의 자리가 하늘 문이 열리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내가 있는 그 고통의 장소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속한 환경이 더 나아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바벨론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그 땅에 악한 사람이 많았지만 그 사람들 대신에 왜 다니엘과 같은 신실한 사람이 포로가 되었는지 그 이유는 다 모릅니다. 왜 우리 교우들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이 큰 병에 걸리는지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핵심은 우리 모두가 이 바벨론을 헤쳐 나갈 힘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힘을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힘을 받습니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신앙의 정체성 유지입니다. 내 신앙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황태자의 직위를 버리시고 이 땅의 타락한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바벨론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말구유에 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 속에 들어가시고 낮아지시고 깨어지신 것들이 다 바벨론의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날마다 경험한 줄로 믿습니다. 그 힘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늘의 황태자의 직위를 버리시고 바벨론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경험한 십자가와 그 분이 경험한 말구유와 그 분이 경험한 무덤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를 원망하지 말고 하늘 문이 열리는 그 장소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늘의 신비가 열리는 장소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이 땅 바벨론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와 무덤으로 내려가시고 말구유의 겸손하심을 기억하면서 주님 때문에 다시 용기백배 할 수 있는 거룩한 종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7.3.1)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