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나만 구원 받아 행복할까?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22년 08월 05일 다음

본문말씀   |

  로마서 9:1~5   Romans 9:1~5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1 I speak the truth in Christ-I am not lying, my conscience confirms it in the Holy Spirit-
2 I have great sorrow and unceasing anguish in my heart.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3 For I could wish that I myself were cursed and cut off from Christ for the sake of my brothers, those of my own race,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4 the people of Israel. Theirs is the adoption as sons; theirs the divine glory, the covenants, the receiving of the law, the temple worship and the promises.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5 Theirs are the patriarchs, and from them is traced the human ancestry of Christ, who is God over all, forever praised! Amen.

말씀묵상   |

우리 나라 속담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서 9-11장을 읽으면 바울도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상식을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자기의 동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것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그러한 심정은 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울분이 깃들어 있는 고통입니다.
4절과5절을 보면 바울의 울분이 어느 정도 느껴집니다. 이처럼 바울이 울분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득권(하나님의 선민으로 율법, 예배,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었다)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목이 곧아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교회를 핍박하고 복음을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자기 백성을 바라보면서 목숨이라도 내던져 그들을 구원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의 고통 저변에는 자기 동족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끊어진다' (아나테마)는 참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 정복시 물건하나 남김없이 완전히 전멸하게 하였는데 '아나테마'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 자기 동족에게 얼마나 무지무지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는지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구원 이상으로 동족의 구원에 대해 마음을 쓰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습니다. 바울은 죄는 미워하였으나 영혼은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 동족을 바라 보았던 바울, 오늘 우리는 바울을 통해 큰 교훈과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모르는 형제를 위해 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8절을 읽으면서 확신에 찬 바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바울의 탄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는 구원받지 못한 동족을 바라보는 바울의 비통한 탄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절에서 감격에 이은 비통한 탄식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은 체험하면 하는 만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며 고통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과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한 고통의 마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격해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해 아무 마음도 가질 수 없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 우리가 얻은 구원, 우리가 체험한 기쁨은 너무 좋은 것이어서 이를 소유한 자는 자기 혼자 숨겨놓고 있을 수 없는 본질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성령께서 주시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이웃 형제들을 보면서 근심하고 애통하는 마음 역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라면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이웃에 대한 근심이 있어야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이웃의 영혼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성령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가까운 형제, 동족부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은 개인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그 영혼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들은 가청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 대해 여러 가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를 말할 때 예루살렘과 땅끝을 함께 말해야 하지만 예루살렘이 우선 수위에 있어서 먼저 다루어져야 합니다.

내 가정, 내 이웃, 내 직장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통하는 양심이 있어야 하며 생명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마음만 알고 있어서는 안되고 그들과 만나고 접촉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단점은 “끼리끼리”라고 하는 틀 속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이 교회에 계속된다면 죽음 혹은 파멸을 초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좋은 교제를 유지하면서 마침내 예수 믿는 자들의 행복을 간증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과 주를 모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