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이처럼 사랑하사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19년 09월 18일 

본문말씀   |

  요한복음 3:14~21   John 3:14~21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4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desert,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8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19 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0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1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말씀묵상   |

요한복음 3:16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세상의 지식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공간개념을 동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가장 낮고 천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구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류입니다.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낮고 낮은 세상을 향한 사랑, 그것은 얼마나 높고 깊은 사랑인지요!

또 이 사랑은 ‘멸망치 않고’라는 말로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멸망이라는 단어는 심판, 지옥, 형벌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치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비참한 자리에 두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의 비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누구도 그런 형벌에 이르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멸망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소롭게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빛이 왔지만 그 빛을 미워했습니다(19~20절). 그 빛이 자신들의 악을 드러내고 저지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멸망의 비참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인간을 찾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얼마나 높고 깊습니까! 그러나 단지 멸망하지 않는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자신의 영광에 이르러 그 영광을 나누는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만족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아들의 자리에 앉게 하시며, 잔치를 배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영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의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까지는 행복해지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우리가 영생을 얻어야 행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러면 그 사랑의 길이와 넓이는 어떠합니까? 그 사랑은 태초부터 시작하여 영원까지요, 남녀노소 모든 인류에게까지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증거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것입니다. 14~15절은 재미있는 예입니다. 광야에서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뱀에 물려 고통하는 이스라엘에게 주님이 주신 처방은 높이 들린 놋뱀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놋뱀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리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분을 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의 처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몸이 붓고 어지러울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놋뱀을 본다는 것은 힘을 다해 몸을 돌리고 그것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사랑은 차가운 이론이 아니라 느낌이요 체험입니다. 가슴으로 아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아무리 무거운 인생의 짐이라 할지라도 가볍게 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나 같은 것을 위해 주님께서 갈보리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의 그 넓고도 높고도 깊으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그 사랑이 녹아들어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