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성령과 우리의 연약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19년 02월 20일 

본문말씀   |

  로마서 8:26~27   Romans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6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7 And he who searches our hearts know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말씀묵상   |

우리의 몸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약합니다. 심지어 무엇이 지나쳐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됩니다. 은혜라 할지라도 분수에 맞게 받아야지 너무 지나쳐도 위험하고 부족해도 곤란합니다. 인간의 이 연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유전된 타락의 결과이기 때문에 중생 받았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으며 믿음이 좋다고 해서, 혹은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금방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 연약은 우리가 일생동안 짊어지고 살아야 할 무거운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연약함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잘 아시지만 우리를 천사로 바꾸어 놓으시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연약을 도우시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도우시느냐 성령을 보내어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에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즉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도우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함께 담당한다’, '맞잡아 준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어떤 사람이 통나무를 메고 가는데 너무 힘들어 할 때 누군가가 한쪽을 거들어 주는 것' 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스펄젼은 노젓기를 배우는 아들의 예를 들어서 '도우신다'는 뜻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처음 노젓기를 배울 때 보통 고생을 하는 게 아닙니다. 아들이 가장 쉽게 배우는 방법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노를 잡는 아들 뒤에 앉아서 아들의 손 위를 덥썩 잡고서 함께 저어가며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주 쉽게 노젓기를 터득합니다. 이처럼 성령은 노젓기를 배우는 아들을 돕는 아버지와 같이 도우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오셨고 연약하기 때문에 동행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한탄하며 마침내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실은 우리의 연약함이 성공과 능력의 비결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러면 성령은 우리의 무엇을 돕습니까? 기도를 돕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연약함이 제일 먼저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기도 없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 가운데서 기도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기도 생활에 탈이 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우리의 연약함에 짓눌려 신앙자체가 파선할지도 모릅니다. 감기는 모든 질병이 침투해 들어오는 통로라고 합니다. 기도의 적신호야말로 모든 영적인 생활의 감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떻게 우리를 돕습니까?

첫째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심으로 도우십니다(26).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는 것은 성령이 직접 탄식한다는 주장과 성령이 우리의 영을 움직여 탄식하게 한다는 두 가지 주장이데 저는 이 두 주장이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직접 탄식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자신들의 꼴을 한번 들여다 봅시다. 게으르고 무모하며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는 우리, 어찌 성령이 탄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성령은 자신의 탄식이 우리의 탄식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자연인은 탄식하는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23절에서 이미 말씀 했듯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거듭난 사람들이 속으로 탄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성령만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실은 기도, 진실을 담은 기도, 탄식의 기도를 드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27).
이 말은 성령이 친히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신다고 해도 좋고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인도하신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도하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가 지겨우니 고기를 달라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시 106:15)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몹시 연약하며, 둔감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손해보는 기도, 하나님이 응답할 수 없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불안전한 기도를 도와 온전케 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면 함께 들어오시고,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함께 꿇으시고, 우리가 입을 열면 함께 여시고, 탄식하면 함께 탄식하시고 일어서면 함께 일어서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아니 짊어져 주시는 그 성령을 찬양합니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