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왜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나?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21년 04월 11일 

본문말씀   |

  히브리서 2:9~18   Hebrews 2:9~18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9 But we see Jesus, who was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now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because he suffered death, so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0 In bringing many sons to glory, it was fitting that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exists, should make the author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1 Both the one who makes men holy and those who are made holy are of the same family. So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brothers.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2 He says, 'I will declare your name to my brothers; in the presence of the congregation I will sing your praises.'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3 And again, 'I will put my trust in him.' And again he says, 'Here am I, and the children God has given me.'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4 Since the children have flesh and blood, he too shared in their humanity so that by his death he might destroy him who holds the power of death-that is, the devil-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5 and free those who all their lives were held in slavery by their fear of death.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6 For surely it is not angels he helps, but Abraham's descendants.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7 For this reason he had to be made like his brothers in every way, in order that he might become a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in service to God, and that he might make atonement for the sins of the people.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8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말씀묵상   |

쟌 던(John Donne)이라고 하는 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물로 지음 받았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진리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성이나 지혜로 깨달을 수 없는 초월적인 신비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9~18절의 이 본문은 신학적이며 거룩하고 뜻 깊은 성경의 의미있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 그것이 무엇입니까?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장 9절을 보십시오. 뒷부분을 보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그 앞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4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예수 그리스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혈과 육의 몸을 입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공포에서 죽음의 짐을 지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는 모든 자들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되신 주님의 첫 번째 목적은 죄를 멸하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종노릇하는 상태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혈과 육의 몸을 지니시고 몸을 찢어주셨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겨진 것처럼 그 휘장이 찢겨져 하나님과 인간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처럼 자유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겨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 찢겨졌다는 것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몸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혈과 육을 가지신 그 몸을 찢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육신적인 부패함이나 쇠퇴나 속박이나 형언할 수 없는 공포나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이라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로 가는 고속도로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진급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관해서 새로운 눈을 여는 것입니다. 요단강 저편에서 나팔소리가 울려나고 하나님의 성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질 때 그것은 바로 승리의 환호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최고로 좋고 위대한 시간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고 고통 당하시고 죽어주신 이유가 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영광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권리가 획득되고 회복되는 날입니다. 찬란한 그 영광의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살 것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두 번째 목적은 16절과 17절에 보시면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 속량하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힐라스코마이(hilaskomai)’라고 합니다. 이 속량하다는 단어는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이라는 속죄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뒤에 자세히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을 보십시다. 10장 10절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이 내용은 구약의 제사는 한번 제사 드리는 것이 효력이 한번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이것이 바로 속량하셨다는 말입니다. 한 영원한 제사, 한번에 영원한 것을 대치했다, 한번 주님께서 피 흘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하심을 통하여 영원히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 뒤에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동물의 피를 가지고 매년 드려야 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량, 힐라스코마이의 속량은 우리를 흰 눈과 같이, 흰 양털과 같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이유 세 번째입니다. 18절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세 번째 이유는 시험 받은 자들, 고난 받는 자들, 고통 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시려는 것이 성육신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시험 받는다는 말이 헬라어로 ‘페이라조’ 고난과 고통을 당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고난과 시련을 받았기 때문에 시험 받는 자들을 도와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히브리서 4장 15절 16절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똑같은 고난과 시험을 받으셨다고 확신이 되면 우리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때를 따라 도우시는 것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고 우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고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목적을 이해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어떤 적용을 할까요? 복음의 신비에 관해서 비밀의 눈을 뜨고 가장 앞장섰던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이 성육신의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겸손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주님이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영광스럽게 하셨고, 우리의 죄 문제를 속량하셔서 말끔하게 해주셨고, 우리의 고통과 모든 것들을 다 아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주님 앞에 자연스럽게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을 가질 때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안고 왔지만 주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행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너희 목마른 사람들아, 답답한 사람들아 다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믿고 그 분의 겸손을 믿고 그 분 앞에 부복하고 나아가 주님을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7.12.23)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