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죄와 복음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21년 08월 01일 

본문말씀   |

  로마서 5:19~21   Romans 5:19~21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19 For just as through the disobedience of the one man the many were made sinners, so also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man the many will be made righteous.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0 The law was added so that the trespass might increase. But where sin increased, grace increased all the more,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21 so that, just as sin reigned in death, so also grace might reign through righteousness to bring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말씀묵상   |

많은 성도들 중에 자기가 왜 교회 와서 앉아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구원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교인들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죄에 대한 무지입니다. 사탄은 죄를 죄로 드러내기 싫어해서 사람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라는 절실한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어버립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할 성도들이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만큼 비극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기쁨과 감격이 없는 이유, 메마른 이유가 있습니다. 어두움이 없는 곳에 아침의 여명을 즐거워하는 기쁨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죄인인 줄을 모르고 내 죄를 잘 모르니까 예수님이 고마울 리 없고 십자가가 기쁜 소식일 리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병입니다. 바울처럼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이 있다면 십자가가 감사하고 평안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가지 길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첫째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전 인류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예외 없이 철저하게 오염이 된 것입니다. 환경이 나쁘고 주변에 죄가 많아서 내가 더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더러운 죄의 욕망이 죄의 본능이 있기 때문에 내가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원죄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그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려고 하는 인간의 못된 습성을 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선악과를 만들었느냐고 하며 모든 책임을 하나님으로 돌리고 자기는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인간의 교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서 추방해 내버렸습니다.

해가 없는 곳에 어두움을 어두움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에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악하다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아담 때문에 성품이 부패하고 자기 자신이 무능한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것이 없다면 자기 기만입니다. 만약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몸이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를 때 의학 사전을 뒤적이며 자신의 증세와 같은 병을 확인하듯이 사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렇게 사전을 찾고도 모르면 의사를 찾아가서 검사를 받으며 진단을 받습니다. 그래서 병에 걸렸다는 정도가 아니라 병에 대한 자세하고 분명한 진단이 나오면 완전한 병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죄인이겠구나.”, “인간 중에 선한자가 어디있겠어?” 라고 하며 막연히 원죄 때문에 오는 가책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자신을 검토해 보면 죄인이라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사람의 경우에 율법도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자칭 의로움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십계명도 거의 다 지키고 살고, 하나님 앞에서 그래도 나는 양심적으로 살았으니 법을 어기지 않았다며 은근히 자기 자신은 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율법을 가지고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역이용하는 교만한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아담이 가르쳐준 죄도,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철저하게 죄인으로 굴복시키지 못하는 약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나님이 마지막 수단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우리와 꼭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글을 써서 알려주기 보다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 한 사람을 나와 꼭 같은 자리에 세워 놓고 비교하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 방법 중의 하나가 비교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격입니다. 죄 없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입니다. 내가 죄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방법은 죄 없는 한 사람을 내 옆에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마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란 완전한 인격 앞에 섰을 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격 그 자체가 죄입니다.

또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일생 동안 순종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순종이 없으면서 사랑한다는 자는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외식이라는 원래 뜻에는 ‘배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배우’는 마음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사랑하는 체 표현하는 사람이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는 강력한 초청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믿으라고 한 것을 안 믿는 것만큼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뜨리는 완악한 행위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믿지 않는 것이 죄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무관심이 죄입니다. 안 듣는 완고함이 죄입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의 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자기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 때에 구원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에는 모든 죄인이 찾아와서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그 모든 죄를 해결 받는 아름다운 복음이 있습니다. 내가 죄인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십자가의 고마움이 체험이 되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고 주 앞에 탄식할 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감격되고 내 마음을 그 분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진정한 사죄의 기쁨, 용서 받은 기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없는 원인을 말씀을 가지고 조용히 진단해 보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직 근본적으로 아직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기초는 죄인이 회개하고 용서 받은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회개만 하면 구원은 가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모른 것이 비천한 것이고 자기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깊이 인식하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길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설교(1982.2.28)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