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맏아들 콤플렉스를 벗어납시다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17년 05월 01일 

본문말씀   |

  누가복음 15:25~32   Luke 15:25~32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5 'Meanwhile, the older son was in the field. When he came near the house, he heard music and dancing.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6 So he called one of the servants and asked him what was going on.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7 'Your brother has come,' he replied, 'and your father has killed the fattened calf because he has him back safe and sound.'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8 'The older brother became angry and refused to go in. So his father went out and pleaded with him.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29 But he answered his father, 'Look! All these years I've been slaving for you and never disobeyed your orders. Yet you never gave me even a young goat so I could celebrate with my friends.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0 But when this son of yours who has squandered your property with prostitutes comes home, you kill the fattened calf for him!'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1 " 'My son,' the father said, 'you are always with me, and everything I have is yours.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32 But we had to celebrate and be glad, because this brother of yours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

말씀묵상   |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을 깨달으면 아버지의 심정, 목자의 심정,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잘 깨달아 우리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되면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기본자세, 거듭난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맏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맏아들은 노해서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맏아들의 행동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아버지에게 공정하게 대우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대우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에 스스로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는 피해의식,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9절 뒤에 ‘아버지는 나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다.’는 상처받은 자존심과 자아의 드러난 표현입니다. 자기가 공평하게 대우 받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 피해의식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 맏아들의 문제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였습니다. 29절 앞에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겼다.’ 아버지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머슴처럼 일했고 희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아버지께 불순종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공로의식,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그 과대평가 속에서 상처 받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섬기고 아버지의 명을 전혀 거역한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뼈 빠지게 아버지를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하는데 아버지가 자신에게 대우하는 것은 없고 자기는 희생당했다는 느낌입니다. 왜 이런 피해의식을 갖습니까? 은혜의식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계속 잘 섬겼거늘… 그것만 가지면 안 되고 오늘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오늘까지 나를 살려주신 은혜에 대해서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세 번째 맏아들의 문제는 불평불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동생에 대해서 불평불만이었습니다. 30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것 때문에 생긴 피해의식,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한 우월의식, 불평불만 이 모든 것들은 아버지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한 한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의 관심보다도 자기중심, 자기 의가 드러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기 의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스스로는 속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은 죄보다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죄, 자기 의로 포장하는 죄가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가 있는 사람은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강하게 지적하고 정죄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심판자리에 앉아서 남을 비판하다 보면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눈이 열리지 않은 자기 의는 남을 정죄하고 용서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맏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앙생활 오래한 분들이 지을 수 있는 독특한 죄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믿은 분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죄이고, 특히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개혁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분들이 자칫 잘못하면 가질 수 있는 범죄입니다. 한국 교회를 앞에 놓고 한국 사회에서 많이 비난합니다. 이것도 가슴 아픕니다만 교회 내에서 같은 성도들끼리 서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상처 주는 것이 참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내에 들어오면 문제도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포함한 도전이 되어야지 자기 의와 자기 분별이 확실히 나타나는 비판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모두 한식구입니다. 한국 교회는 다 가족입니다. 믿는 자들끼리의 비판과 갈등을 멈추고 같이 아파하고, 짐을 지고 같이 시대를 향하여 거룩하게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맏아들이 이와 같이 피해의식과 우월의식, 불평불만을 쏟아낸 배경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관심사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서 마음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날마다 동구 밖에 나와 둘째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것을 진실로 깨달았다면, 맏아들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사를 자기의 관심사로 알았다면 맏아들은 앞에 있는 그런 정신적인 피해를 받고 잘못된 자아의식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 맏아들을 치유하십니까? 31절에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 아버지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와 복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문 밖에 나와 서서 돌아온 탕자를 맞이했듯이 지금 문 밖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집안의 탕자 맏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32절에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네 동생에게 은혜 베푼 것을 노하지 말라.’ 그리고 31절 뒤에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 뒤에 헬라어의 뉘앙스로 보아 ‘내 것이 다 네 것이니까 네가 지금까지는 요청하지 않았지 않니?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 주었다고 하는데 염소 새끼가 아니라 송아지 열 마리라도 요청했으면 다 주었을 텐데 너는 아직까지 요청하지 않았지 않니? 그러니 네 동생 다시 회복하고 네가 필요한 것을 다 요청하라. 그러면 다 줄게.’라고 하십니다. 불평불만의 입이 쑥 나온 맏아들이 되지 말고, 이 시대의 아버지의 심정, 목자의 심정을 깨닫는 역사와 시대의 맏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자기 의, 자기 불평, 자기 과대평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동생을 품을 수 있을는지, 아니면 안 품겠는지는 너희의 선택에 달려있다. 질투와 분노의식에 사로잡혀 집 밖에 계속 서있든지, 아니면 아버지의 관심과 심정을 이해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든지 둘 중에 하나에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목자의 심정으로 생명의 역사에 눈이 열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7.10.21)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