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시대 해설집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시대마다 일어난 사건과 그 원인을 가르쳐 주시고 또 다가올 일들까지도 미리 대비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은 종말을 앞두고 자다가 깰 때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 경고는 전지전능하시며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문에는 주의해야 할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11절에 나오는 '때'라는 말인데, 원래 헬라어 원문에서의 이 단어는 매우 절박한 의미로 어떤 정해진 시간, 약속된 시간을 가리킵니다.약속된 시간이란 고정된 시간을 향해서 카운트 다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11절).
여기서 구원이란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 중 미래에 일어날 구원을 말하며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실현됩니다. 하나는 개인종말(육체의 죽음)을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종말(예수재림)을 통해서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깨어 있어야 할 시각에 잠자고 있을 사람들이 교회 안에 상당히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자주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바울도 경고하고 있습니다(12절).
이것은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지 자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교회가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혼자 깨어 있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깨어 있다"고 하는 것은 연속적인 위기의식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반복해서 주의를 주고 계시는 말씀 가운데도 그 뜻이 담겨 있습니다(마24:42,4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깨어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13절을 보면 잠자는 자들의 생활태도의 예로 곧 방탕, 술취함, 음란, 호색, 쟁투, 시기, 여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14절에서는 이것을 육신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육신의 일은 특징이 있는 데 그것은 방탕이라는 단어와 호색이라는 단어의 어원에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방탕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음껏 쾌락을 즐기는 것을 일컬어서 하는 말이고, 호색은 글자대로라면 색(色)을 탐한다고 풀이되지만 원의미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철면피라는 뜻입니다. 두 가지 모두 남의 형편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잠자는 삶의 특징이 자기 중심적이고, 육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깨어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생활, 거룩한 생활입니다(롬14:7,8).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다 멸시하고 밀어 낼 줄 아는 사람의 생활이 곧 깨어 있는 자의 생활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게 보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는 가능케 할 수 있는 비결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만 하면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8:29). 비록 어려운 문제가 앞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우리보다 더 큰 지혜를 갖고 계시는 분, 더 엄청난 능력을 갖고 계시는 그 분이 함께 하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마지막 때에 깨어 있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에 방해되는 것은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