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유혹에 속지 말라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24년 02월 01일 다음

본문말씀   |

  야고보서 1:12~18   James 1:12~18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2 Blessed is the man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3 When tempted, no one should say, 'God is tempting me.' For God cannot be tempted by evil, nor does he tempt anyone;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4 but each one is tempted when, by his own evil desire, he is dragged away and enticed.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5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6 Don't be deceived, my dear brothers.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7 Every good and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of the heavenly lights, who does not change like shifting shadows.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8 He chose to give us birth through the word of truth, that we might be a kind of firstfruits of all he created.

말씀묵상   |

유혹이라는 단어는 한 세대 전 까지만 하더라도 명백하게 긍정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했습니다. 죄의 출발이 하와가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아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유혹이라는 단어는 좋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혹이라는 것은 더 이상 죄의 요소의 언어라기보다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능력의 대치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것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능력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죄의 경계성이 사라지고 유혹이 더 이상 죄가 되지 않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유혹을 이기며 성숙할 수 있는지가 큰 과제입니다.

신앙적인 입장에서 유혹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하고 신앙의 길을 떠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유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전공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데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탐심이 될 수도 있고 교만, 성적인 것, 혹은 생활의 패턴에서 오는 게으름, 거짓말, 질투, 원한, 증오심, 상처, 쓴뿌리 등 우리 모두의 허술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편에서는 공격이 되지만 우리 편에서는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나의 약한 부분을 공격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하지 못하면 넘어갑니다. 성숙했다 하더라도 영혼의 민감한 안테나가 접혀져 있으면 다윗 같은 사람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혹은 꽃밭에 숨어있는 독사와 같습니다. 꽃에 욕심을 내어 꽃밭에 들어가는 순간 독사에게 물려 죽습니다.

어떻게 유혹을 이기고 죄의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첫 번째, 13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먼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비결은 유혹을 당할 때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연단과 성숙을 위해서 시련의 문제에는 개입하시지만 유혹에는 책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유혹을 당할 때마다 왜 하나님이 유혹을 막아주시지 않나 하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간접적으로라도 우리를 죄악에 빠뜨리거나 유혹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하나님은 온갖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유혹의 원인은 14절에서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우리 속에 있는 부패한 근성, 예를 들어 성욕이나 속임수 같은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혹의 코드와 맞아 떨어지면 불꽃을 튀기는 것입니다. 이 유혹에 대해서 불꽃이 튀기지 않도록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미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유혹도 없습니다.
유혹은 반드시 단계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유혹의 싸이클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혹의 싸이클에 관해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이것이 유혹의 단계이며 과정입니다. 첫 번째 과정은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욕심이 생긴다고 해서 다 죄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그 욕심을 방치하면 마귀의 유혹이 됩니다. 방치하면 반드시 잉태하고 나중에는 만삭이 되고 만삭이 되어서 유혹의 자식이 태어날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인 유혹의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유혹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그 과정과 단계에서 내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를 알고 미리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습관 가운데 떳떳하지 못한 생활태도, 물질욕, 성욕 이런 것 가운데서 우는 사자가 우리를 삼키려고 찾을 때에 우리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유혹을 받아 망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유혹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귀가 유혹의 꽈리를 틀 때마다 단호함의 망치를 가치고 그 뱀의 머리를 박살내 버려야 합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1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야고보는 지금 16절까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한 다음 갑자기 태도가 바뀝니다. 하나님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다 주시는 분이니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니 그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단호하고 단순하게 속지 말라고 한 다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면서 다시 하나님 품 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18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부모 품속으로 뛰어드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첫 열매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내 스스로가 미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힘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품속으로 들어가십시다. 그럴 때 12절 뒤에 있는 것처럼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주님의 시선과 나의 소원이 일치되면 세상의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도 감당 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속 초점의 시선이 주님이 원하시는 시선의 수준과 동일하게 되는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6.9.17)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