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말씀묵상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본 말씀은 사랑의교회 故옥한흠 원로목사의 주일설교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2022년 09월 26일 

본문말씀   |

  요한복음 11:17~27   John 11:17~27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7 On his arrival, Jesus found that Lazarus had already been in the tomb for four days.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8 Bethany was less than two miles from Jerusalem,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19 and many Jews had come to Martha and Mary to comfort them in the loss of their brother.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0 When Martha heard that Jesus was coming, she went out to meet him, but Mary stayed at home.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 'Lord,' Martha said to Jesus,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2 But I know that even now God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3 Jesus said to her, 'Your brother will rise again.'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4 Martha answered, 'I know he wi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6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7 'Yes, Lord,' she told him, 'I believe that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God, who was to come into the world.'

말씀묵상   |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안고 있는 부활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잘 지적해 줍니다. 특히 마르다의 신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의 부활신앙과 닳았습니다. 23절을 봅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겉만 보면 훌륭해 보이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을 때처럼 칭찬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불만을 드러내 보이시는 듯한 분위기 입니다. 마치 24절과 25절 사이에는 "그것 뿐이냐'!"고 꾸중하시는 주님의 물음표와 “뭐가 잘못되었나요?” 하고 묻는 마르다의 의아함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25절은 좋게 말하면 예수님이 마르다의 믿음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시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다야 나를 그 정도로 밖에 보지 않니? 마지막 날이 되어야 너의 오라비를 살릴 수 있고 지금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만 믿고 있느냐? 크게 오해하고 있구나. 분명히 말해주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마르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엄한 꾸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27)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신앙은 말의 고백에 머물고 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고 반응을 했으니까요. 아마도 그녀가 예수님이 부활임을 진짜 믿었다면 그런 식으로 반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활신앙은 고백은 하면서도 오라비가 죽은 비통한 현실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력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부활신앙은 기근을 만나 굶주리고 있는 사람의 금고에 들어있는 1억짜리 채권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참된 부활신앙은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 힘을 발휘하고 효력을 나타내는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식의 표어가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 했으면 아브라함처럼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능력 있는 분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자기가 생명 자체요 부활 자체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생명의 원천인 자기가 있는 이상 이제 나사로는 더이상 죽은 시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무덤 앞에 서 계시는 이상 이제 더 이상 그곳은 무덤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일으키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눈물, 슬픔, 실패, 절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를 팽팽하게 채운다면 그 신앙은 우리의 생활현장에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삶을 의미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1:21),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누구든지 살아 있는 부활신앙을 소유하기만 한다면 현실에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놓고 그것을 보는 눈,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부활의 주인공이 서 계시는 자리에 슬픔이, 실패가, 고통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처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죽을 병이 아니다", "네 오라비가 살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삶에 지쳐 있습니까? 마르다처럼 죽음 앞에 서서 울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오늘의 기도   |

언제 어디서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가운데 닥치는 고난과 시련앞에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되시는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아멘